‘사초(史草) 실종’ 논란으로 정국을 뒤흔들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이 결국 소리만 요란하고 내용은 없는 ‘빈 깡통’이었음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는 어제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를 공모했다고 해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용전자기록 손상 혐의로 기소된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 비서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삭제했다는 회의록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할 수 없고 당연히 폐기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애초부터 검찰의 기소가 무리였음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기록물의 정의와 기준에 대한 첫 사법적 판단이다. 핵심 쟁점은 논란이 된 회의록 초본을 법률상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있느냐였다. 재판부는 회의록 초본이 형태, 직무관련성, 주체 요건 등을 갖췄지만 생산 요건인 대통령의 승인이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초본은 수정·보완을 거쳐 완성본이 만들어지면 폐기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시작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문은 순전히 정쟁에서 비롯된 ‘기록 참사’다.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주장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처음 제기한 뒤 김무성 대표, 서상기 의원,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에 의해 확대재생산됐다. 결국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 기록을 국회가 열람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NLL 포기 발언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회의록 내용을 유출하고 공개한 혐의 등으로 고발된 여권 인사들은 검찰에 의해 약식기소 또는 무혐의 처리됐다. 반면 회의록 열람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감추기 위해 회의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이른바 ‘사초 폐기’ 논란이 제기되자 검찰은 무리하게 두 사람을 기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사초 폐기도 아니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대통령기록물의 체계적 관리는 일제강점기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단절됐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록문화 전통을 잇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에서 대통령기록물이 정쟁의 도구가 된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려되는 점은 그것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파문에서처럼 보호돼야 할 기록이 유출됐다는 의혹이 그런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대통령기록물이 정상적으로 생산·보관·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로하스 시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기사
뉴스종합 많이 본 기사
|